스토커 / 박찬욱

2024. 11. 19. 14:13Culture/movie

 

 

<스토커>의 감독 박찬욱: 

"스스로를 아는 것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

<올드보이>의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복수와 근친상간, 심지어 아마츄어적 치과시술까지 선보여왔다. 그렇다면 그의 헐리우드 데뷔작 '고딕동화' <스토커>에서 그는 어떤 공포를 맛보여줄까?

박찬욱… "저는 꼭 영화에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지금 어두컴컴한 곳에 있다. 그의 고개는 젖혀지고, 그의 기분은 다소 우울하다. 메스꺼움이 잔뜩 묻어나있는 <올드보이>와 그의 나머지 복수시리즈를 감독한 이 한국인 감독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지 못하는 적에게 최근 감금이라도 당한것일까? 아니면 어떤 비밀스러운 장기밀매조직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걸까? (역주: 복수시리즈에 대한 언급)

  1. 스토커
  2. 제작년도: 2012
  3. 감독: 박찬욱
  4. 출연: 매튜 구드, 미아 바시코브스카, 니콜 키드먼

사실은 그가 키우던 고양이가 죽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게 힘들다. "10년 넘게 키웠던 녀석이에요."

박찬욱 감독이 키우던 러시안블루 종의 고양이 "무카"는 박 감독을 따라 그의 새 영화 <스토커>의 촬영장을 떠돌던 고양이 저승사자(Kitty Reaper. 역주: 사람의 혼을 빼가는 서양식 저승사자 혹은 사신 Grim Reaper를 고양이로 대체해 놓은 말장난)의 수많은 피해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작곡가 클린트 맨셀(Clint Mansell)의 고양이 "모그"도 같은 때 죽었다. "한가지 위안은 고양이가 촬영이 한창일 때 죽은게 아니라 포스트 프로덕션(편집) 때 죽었다는거에요." 박 감독은 말한다. 고급스러워보이는 영화 <스토커>는 그의 첫 영어로 된 영화다. 하지만 분명 그의 영화다. 장면장면이 마치 그림책같고, 일꾼들이 가느다란 발목만 보이면 엄습해가며, 잘 빗어넘긴 머리카락은 옥수수밭으로 스며들어가고, 피가 낭자한 나뭇잎이 여기저기 보인다. 

박찬욱 감독으로서는 한국인 배우의 부재가 영화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기도 한다. 미아 바시코브스카(Mia Wasikowska)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어 슬퍼하는 18살의 소녀 인디아 스토커를 열연하는 반면, 그녀의 어머니 에블린(니콜 키드만 분 Nicole Kidman)은 특히, 전 남편의 비밀스러운 동생 찰리 (매튜 구드 Matthew Goode)가 장례식에 나타나자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자유를 되 찾은 것 처럼 보인다.  그와 같이 오렌지 빛깔의 태닝을 한 사람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인디아는 가정으로 침입해 들어온 새로운 삼촌의 기분 나쁜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찰리 삼촌이라는 이름은 사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43년 작 <의혹의 그림자>에서 한 가정에 느닷없이 나타나 그 가정을 파멸로 몰고 간 찰리 삼촌 (조셉 커튼 분  Joseph Cotton)에 대한 오마쥬다.

박 감독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배우 웬트워스 밀러(Wentworth Miller)의 원 대본에서 알프레드 히치콕과 연관된 부분은 대부분 삭제해야 했다고 전한다. 영국인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박찬욱 본인미친 영향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니던 박찬욱 감독이었지만 거장의 깊은 발길을 직접적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히치콕 감독이 장소로 사용했던) 테네시주 내쉬빌에 대해 크게 감명이 깊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미국적인 영화를 찍고자 함도 아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스토커 집안에서 일어나는데, 이는 박찬욱 감독이 어느 특정한 지역적 특색을 없애기 위한 박찬욱 감독만의 기법이다. 그가 흥미있어하는건 박찬욱 감독만이 의미를 부여한 단순하고 제한된 가족사를 둘러싼 "고딕동화"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포함시킨 부분이 있습니다. 와인과 관련해서 말하는 장면이죠." 박찬욱 감독이 화려한 저녁식탁이 나온 장면에 대해 설명한다. "에비(Evie)가 성숙한 와인을 음미하는 것을 보면서 찰리(Charlie)가 이렇게 말하죠. 'well you can't compare it to a younger wine, which is too tannic. (이 성숙한 와인을 새 와인하고 비교할 수는 없지요. 새 와인은 너무 타닌맛이 강하니까요.)' 그런데, 관객들은 찰리가 고른 그 와인이 에비가 아니라 인디아(India)를 위한거라는걸 깨닳게 됩니다. 와인을 인디아에게 건내며 '1994: the year you were born.(1994년, 네가 태어난 해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사실 1994년은 제 딸이 태어난 해에요. 제 딸에게 바치는 장면이죠."

니콜 키드먼과 미아 바시코브스카가 나온 스토커의 한 장면.

복수와 근친상간, 아마츄어 치과시술 등의 강도높은 장면들로 가득찬 영화를 주로 만드는 박찬욱 감독은 그의 딸 서우가 자신의 영화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2006년 로맨틱 코메디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다. <스토커>는 박 감독이 다시금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통스러운 표현이 가득 담긴 영화다.   그렇다면, 과연 이 격정적인 성년식 이야기가 그의 아이들에게 던져주는 메세지는 과연 무엇일까? 전등가에 앉아 초콜렛 머핀을 집어든 박 감독은 그의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연신 계란형 탁자에 갈아대며 빙그레 웃어댔다. "저는 꼭 영화에 메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꼭 답을 얻어내셔야겠다면 '스스로를 아는 것이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 정도가 되겠네요."

그의 리더쉽은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부정할 수 없는 "박찬욱표" 극본을 선택하는 방식이야 말로 50년 인생을 살아온 그가 국제적 관객들을 위해 나아가는 일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박 감독 개인을 보고 있자면 무언가 굉장히 자아성찰적이면서도 자가조절적인 면이 있다. 파란색 블레이저 상의와 회색 바지를 입고 뿔테안경을 쓴 채로 라이카 카메라의 가죽끈을 어깨에 맨 그의 모습은 전형적인 "고전 컬트영화하는 사람"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영화동아리에서 활동하며 80년대 한국의 대학생이었다면 다들 참가했을 당시의 민주화운동을 생생히 겪어온 청년 박찬욱은 영화 감독의 꿈을 꾸며 영화평론가로 활동했다. 그의 처녀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이 당시 평론가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하자 그는 가명을 사용하여 스스로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대학논문으로 써 내기도 했다.

박 감독의 영화를 최초로 서양의 관객들에게 소개했던 타르탄 필름(Tartan Films)의 전 대표 하미쉬 맥알파인(Hamish McAlpine)에 의하면, 박찬욱 감독은 무서울 정도로 영화에 미쳐있다고 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아마도 제일 똑똑한 사람일 겁니다. (한국영화도 그렇겠지만) 서양영화에도 정통해 있어요. according to 언젠가 제가 제이엠 배리(JM Barrie)나 메리 로우즈(Mary Rose)의 연극을 읽어 본 적이 있냐고 묻더군요. (역주: 제이엠 배리는 피터팬을 쓰고 극화한 스코틀랜드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없다고 그랬죠. 제가 아는 건 <로스트 보이>가 전부였으니까요. 알고 보니 제이엠 배리 가(家)의 땅 안에서 히치콕 감독이 영화를 찍으려다가 거부당한 적이 있더군요. 박 감독에 저에게 그 연극의 대본을 구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아마도 서양의 영화학자들 중 99.9%는 그런 것도 모를 거에요."

그러한 놀라운 지식을 이용해, 박찬욱은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의 붐을 이끄는 감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아마도 당시 그가 연출한 영화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남북간의 긴장의 괴로움을 표현한 <공동경비구역 JSA>일 것이다. 올해, (지금은 성숙한 단계에 다다른) 한국의 영화산업은 세 명의 거장감독들이 헐리우드 영화를 감독하며 또 다른 중간점에 다다랐다. 박찬욱 감독과 더불어 아놀드 슈왈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과 시대정신을 하나로 묶은 최근의 영화 <라스트 스탠드>를 감독한 김지운 감독, 그리고 만화책 <설국열차>를 극화하고, 다국적 배우들을 이끄는 올해 SF계 최고의 기대작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있다.

박찬욱 감독이 동료감독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참가해 프로듀싱을 맡았던 <설국열차>.

박찬욱 감독은 <설국열차>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한다. 단순히 커리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일곱살 연하인 봉준호 감독에 대한 책임감에서 나온 결정이다. "동양문화에서의 선후배관계에 대한 중요성을 이해하시려나 모르겠네요." 봉 감독은 말한다. "멘토와 같은 관계는 분명 아닙니다. 우리는 여러해 알고 지내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영화를 잘 마무리 짓는데 꼭 필요한 분이에요. 다른 프로듀서들과는 달리 돈이 많이 드는 부분에서 좋은 의견을 많이 주곤 해요. 감독이시니까, 아마도 그런 부분에서의 끼를 주체할 수 없으셔서 그런것 아닐까요."

하지만 세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의 방법으로 각각 다른 방식을 채택한 사실은 눈에 띄는 점이다. 스스로 "지배본능"이 있다고 고백하는 봉준호 감독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헐리우드에 나아간 반면, 라이언스게이트(Lionsgate)와 협력한 김지운 감독, 그리고 폭스 서치라이트(Fox Searchlight)와 협력한 박찬욱 감독은 기존의 헐리우드 스튜디오와 협력관계에 있다. 세 감독 모두 아시아에서 감독이 전권을 쥐고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지는 분위기에 익숙해 있다가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미국식 스튜디오 분위기에 적응이 필요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스스로의 주체가 되어 창의성을 발휘했고 김지운 감독이 스타 감독으로 "고용"되어 영화를 제작한 반면, 박찬욱 감독은 자신의 감독적인 개성을 지키기 위해 현지 스튜디오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스토커>는 20여분 가량이 삭제되어 비교적 짧은 1시간 38분의 영화로 편집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한국에서 겪어왔던 것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에요." 박찬욱 감독은 말한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 미국날씨에 대해 불평할 수 없는 것처럼, 서치라이트 쪽 사람들도 상당히 괜찮은 취향을 갖고 있습니다. 의견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최소한 말도 안되는 요구는 안했으니까요."

아마도 제작사들의 마음을 얻기위해서는 괴짜감독의 개성보다는 침착함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박찬욱 감독은 충분히 침착하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에 나오는 악의적 성향들을 바라볼 때, 박 감독의 헝클어트리기 힘들만치 침착한 겉모습 속에 무엇이 담겨있을지 궁금하게 된다. 맥알파인 전대표는 박 감독이 정종 몇잔을 나눈 뒤에야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타입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종류의 침착함은 박찬욱 감독이 늘 가지고 있던 성격에 불과하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던 소년 박찬욱에게 목사님은 그가 커서 훌륭한 성직자가 될 수 있으리라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제가 꽤 매너가 좋았나 보네요" 박 감독은 회상한다. "아니면 제가 여자한테는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만약 그랬다면 그건 그 때 목사님이 틀린거였겠지만요. 여자를 너무 너무 좋아해요. 신학교에 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교회도 그만 뒀죠. 제 신앙때문에 가는게 아니라 습관때문에 가는 걸 깨닳았거든요."

어쨋든 그런 연유로 박찬욱 감독은 악마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그의 복수시리즈를 통해 연주되는 스타일리쉬하고 광기어린 왈츠는 수많은 서양의 팬층을 낳았고, 우아하지만 지나치게 가열된 <스토커> 또한 헐리우드 진출을 눈 앞에 둔 그의 신화의 좋은 출발점이 되어주고 있다. (아시아 감독 중에는 이안 감독과 오우삼 감독만이 해낸 일이다.)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어 올해말 개봉되는 <올드보이>는 이런 그의 성공에 또다른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은 언제나 자 "아니면 말고!" 라는 가훈을 되돌아 보면 된다. 박 감독이 그의 딸도 배웠으면 좋겠다고 전하는 이러한 삶의 자세는 옛 군사정권에서 지나치게 결과중심에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에 반발하며 그러한 옛 정신을 떠나보내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다고 한다. "단순히 '아니면 말고!' 하는 게 아니에요. 뭔가 이루고 싶은게 있는데 그게 생각같이 되지 않는다면, 그 과거의 실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마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할겁니다."

현시대 한국 최고의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사람으로서는 조금 맞지 않는 자세가 아닐까? "정말이요? 무엇인가 억지로 이루려고 한 적은 전혀 없는 것 같네요. 다들 그러잖아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저한테는 반대에요. 즐길 수 없으면 피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