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세상(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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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 김경란
들꽃 / 김경란 던져진 생이라고 슬픔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바람 가운데 함부로 흔들린다고 ... 네 앞에서 쉬운 꽃으로 꺾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 너른 세상에 들꽃으로 피어나 하늘처럼 살고 싶었을 뿐이다 짙은 향기로 너를 매혹시키지는 못해도 외롭다고 칭얼댄 적 있느냐 함께 바람을 맞으며 우리가 같은 모습을 갖고 태어나 같은 표정으로 같은 몸짓으로 한 계절을 흘러가지만 나는 아무도 그립지 않다 빛이 작열하여 내 몸을 태워도 나는 한 번도 울어본 적 없다 잠시 멈추어 손목 한 번 잡은 바람의 정이 있다고 해서 기다림이 얼마나 고독한 사랑인지를 느껴본 적도 없다 내가 너의 가는 길을 막은 적이 있느냐 이렇게 기댈 벽도 없이 시시때때로 흔들린다해서 나를 함부로 꺾지 마라 나는 한 계절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이..
2023.08.03 -
오늘 / 벽암록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 내 삶에서 절정의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이다. 내 생애에서 가장 귀중한 날은 언제인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이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다가오는 오늘이다. 그러므로 '오늘'하루를 이 삶의 전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 - 벽암록 -
2023.08.03 -
동해시 부흥횟집
40년 전통에 물회가 유명하다고 한다. 삼척 덕산 물회와 별 다르지 않다. 맛있게 먹고 왔다.
2023.08.01 -
횡성 삼군리막국수
횡성군 삼군리 막국수 손님이 많다고 하여 산넘고 물건너 깊은 산속으로 헤매 찾아들어왔다. 그런데 맛은 영, 이 맛이 오리지날 메밀 맛이란다. 같이 오신분 왈! 손님은 많다.. 오후 5시경인데도 제법 사람이 있다. 슬쩍 들어보니 서울 사람이 많다. 잘 모르겠지만 맛이 있나보다 김병도 관장님이랑 방문한 가게로 기억된다. 그분은 건강히 잘 계시려나 궁금하다...
2023.08.01 -
넓고 깊은 물은 소리없이 흐른다. --숫타니파타-
깊은 물과 얕은 물은 그 흐름이 다르다.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고 넓은 바다의 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 ...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소리를 내는 법 없이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물을 채운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 숫타니파타 -
2023.07.19 -
두바퀴의 유산 엄복동
"떴다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50~60년대까지 초등학교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르던 노래다. 암울한 시대에 두 바퀴로 희망을 전하다. 자전거 선수 엄복동, 나라 잃은 조선인들을 하나로 묶은 시대의 영웅이다. 일제강점기에 국민에게 희망을 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사이클선수 엄복동은 조금 생소하다. 이렇다할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려 15년간 일본선수를 제치고 연전연승을 했다. 심지어 중국에까지 가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단순히 유명했던 사이클선수가 아니다. 그는 나라를 빼앗겨 눈물을 삼키며 살아내야 했던 민중들의 울분과 한을 싣고 달린 시대의 영웅이자 나라 잃은 조선인들을 하나로 묶어준 민족영웅이다. 엄복동 동영상 http://tvpot.daum.net/..
2023.07.12 -
"카레이 우라" 조마리아와 안중근
먼저가는 것을 불효라 한다면 이 어미는 조소거리가 된다..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니 살려 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의연히 목숨을 버려라. 100년전 중국 여순감옥. 사형을 기다리는 아들에게 보낸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마지막 편지. 일본 제국주의의 수뇌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동양 평화를 외친 안중근.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어머니가 손수지은 수의를 입고 서른한 해의 생을 마감한다. 안중근과 그의 어머니,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기억한다. 안중근 그의 마지막 소원은 시신을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효창공원 내에 마련된 순국 독립운동가의 묘역에는 윤봉길, 이..
2023.07.12 -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우당 이회영
이회영은 1867년 한성부의 명문가로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의 아들로 태어났다.위로 세형 이건영,이석영,이철영 그리고 아래로 두동생 이시영과 이호영. 이들은 고국의 독립을 보지못하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살아서 해방을 본건 다섯째 이시영, 그는 48년 해방된 조국에 초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이승만에 독재에 항거해 사임했다.많은 친일행각을 벌인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실 속에서도 이시영의 가족들은 올곧은 지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1919년 중국 길림성 돌산자락에 세워진 조그만 학교, 신흥무관학교 이는 교사와 학생이 돌을 날라 세운 대한독림군의 요람이다. 만석꾼 명문가의 자제로 자신의 전 재산( 대략 60명에 가족이 지금에 600억 가량에 금액으로 중국으로 갔다고 함)을 ..
2023.07.12 -
재물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라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 -거상 임상옥-
잔에 술이 가득 차면 술이 그대로 새어버리는 술잔 계영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기 위해 계영배를 늘 곁에 두었던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 중국 상인들의 텃세를 이기고 국경에서 인삼을 거래해 엄청난 부를 쌓은 무역상. (북경 상인들이 조선인삼을 사지않기로 담합하자, 인삼을 불을 질러 태움으로서 질좋은 조선인삼 품기현상으로 많은 이익을 남김). 그가 남긴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아야 하고, 사람은 바라기가 저울과 같아야 한다"는 말. 이말을 실천하기 위해 임상옥은 가난한 이들에게 전 재산을 남기고 초가삼간에서 삶을 마감했다. 평생 동안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한 임상옥. 그가 지키려 한 것은 더할수록 빛나는 우리의 정신이다.
2023.07.12 -
이순신 수군 해전 정리
1. 옥포해전 (1592. 5. 7) 옥포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첫 번째 해전이었다. 장군은 부산포 근처에 먼저 탐망선을 보내어서 살피게 하였다. 장군은 일본 함대의 규모와 전투방식을 알아내기 전까지 출전하지 않았다. 5월 7일에 그는 원균의 함대와 함께 출발하여 옥포로 향하였다. 일본 함대는 배에서 내려서 옥포 근처에 있는 마을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조선 함대를 발견하자 바로 배에 탑승하였다. 장군은 일본군들이 모두 탑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포사격을 명하였다. 장군의 함대는 배를 한 줄로 만드는 일자진을 취하고 있었다. 장군은 그 당시 매우 흔한 전법인 적의 배에 올라타는 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 배들에 함포 사격만 하도록 명하였고 일본 함대를 거의 다 파괴하였다. 옥포해전의 승리는 ..
2023.06.20